2013년 6월 29일 토요일

에반겔리온 (1) - 목소리와 현상



Do you understand?
Yes, I do.
How come?
The earth gyrates.


"Chances" are that she might have been a langue in the past.


Suppose that the truth is a woman! What?
Then, we are "sullified" enough to be human!
Suppose that we live in a "Matrix."
Got the point?

We are surrounded by so many different simulacres.
Most importantly, 'simulacres' rotates through the acre simultaneously.
That's exactly what the term simulacre means in the metalanugage dictionary.
Our brain is not "sullified" enough to accept the de facto standard.

Please note that we still live in a matrix.






 


  





"I know the tablet offers me a flavor of the beer. I live in a Matrix."


Do you guys still believe that they belong to the same species?
Is it possible? Uh?

기호는 <존재자>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그것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호는 존재자와는 다른 사물이 아닐까? 기호는 어떤 사물이 아니기에 <무엇인가>라는 물음 아래 놓이지 않는 유일한 사물이 아닐까? 반대로, 기회가 주어지면 그 물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철학을 티 에스티(희랍어. <(그것은) 무엇인가>)의 제국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닐까?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목소리와 현상』(La Voix et le phenomene). 인간사랑. 2006.40페이지.)

신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되묻는다. 만일 이 공간이 매트릭스라면 신지의 물음은 타당하다. 그렇다면 과연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메(Anime: アニメ)를 향하여

우시아(ousia)는 무엇인가?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당혹에 빠뜨린다. 당혹에서 벗어나는 첩경은 먼저 이 물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서언에서 존재물음의 근본 목표를 제시한다. 이 서언에서 특히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플라톤  <소피스트>편(244a)에서 논의된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ΥιΥαντομακία περὶ τη̃ ς οὐσίας)에 관한 인용문이다. <존재와 시간> 1절에서도 하이데거는 존재물음이 망각 속에 빠져 버린 세태를 비판한 뒤, 거인족의 싸움을 언급한다.

거인족의 싸움에서 문제가 되는 존재는 우시아(ousia)이다. 우시아는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와는 다른 것이다.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가 인간과 존재자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선술어적 조건임에 반해, 우시아는 본래적 존재자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를 둘러 싼 거인들의 싸움”은, 참된 존재자를 가시적(可視的) 물체에 한정하려는 거인족(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 원자론자, 유물론자를 비유함)과 참된 존재자를 비가시적인 형상에서 구하려는 올림포스 신들(피타고라스학파, 엘레아 학파를 상징함)간의 싸움이지,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싸움은 아닌 것이다. (이선일. 2003.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철학사상 별책 제2권 제12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p.10)


릴리스(Lilith)는 릴리스((황야에 살며 어린이를 습격하는 여자 악령))와 릴리스((아담의 첫 아내; 이브에게 쫓겨남))라는 두 가지 존재를 통해 드러난다.

만일 언어가 스스로 살아 있는 유전자라면 인간들의 개입이 없어도, 아니 오히려 그래야만 더 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해바라기의 선형성이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인간들의 두뇌로 파악하기 쉬운 '동음이의어' 현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뒤에 숨은 패러다임을 늘 과학적인 원리와 더불어 고찰해야 할 것이다.

플라톤의 거인들은 '우시아'(ousia)를 둘러싼 싸움을 벌인다. 그렇다면 '우시아'(ousia)에 대한 언어적 흔적이 남아 있어야만 한다.

(1) Usía 각하(閣下) = Usiría
(2) parusía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거의 모든 알파벳어가 그러하듯 스페인어도 'par'가 분할을 드러낸다.

(3) par = 八 

'8'을 가리키는 일본어는 '하치'다.
(4) はち (八) 여덟; 여덟째.
(5) はち (鉢) 1. 사발  2. 화분.(=植木鉢)  3. 용기(容器).
역시 '용기'와 연결한다.  동일 음소를 지닌 영어의 hatch를 보자.

(6) Ten chicks hatched (out) this morning.

이 밖에 화물의 출입구나 위로 젖히는 출입문, 즉 그라마톨로지의 門처럼 생긴 것을 가리켜 hatch라 한다. 그러나 '해치를 닫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양면결합어다.
메타 기호계에서 '하치'(hatch = はち)는 생명소의 탄생과 관련 깊다.

이데아의 세상








매트릭스의 공식

명확하게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쪽 공간은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플라톤이 '파르마콘'을 이용해 기록화한 매트릭스인 것이 분명하다. 정확한 수학적 인지 모듈의 랑그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카(あすか: 飛鳥)는 저렇게 락타아제를 남기고 죽고 만다.



그럼 에반겔리온에 드러나는 정확한 메타 기호소에 대한 분석을 들어가보자. 모든 것은 모호성(ambiguity)의 가면을 쓴 명확한 패턴 안에 존재한다. 이 곳은 바로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